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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공부

프로이트 원초아는 진상! 초자아는 종교인!

by 꿀꿀라이프 2023. 8. 26.

원초아는 진상

인간은 본래 쾌락만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모든 인간이 쾌락만 추구하다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로마의 문란한 세상을 접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을 하는데

스마트폰의 쾌락에 빠져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아이는

원초아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의 조정자 역할

 

이때 작동한는 것이 자아인데 자아는 원초아에게 말을 건다.

"네 앞을 봐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가 보이지 않니?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시간인지 생각해 보자!

그렇지 않으면 스마트폰 압수당할지도 모르니

고민 좀 해봐야 하지 않겠니?"

https://inforrlife.tistory.com/entry/%EC%9B%90%EC%B4%88%EC%95%84%EB%8A%94-%EC%A7%84%EC%83%81-%EC%B4%88%EC%9E%90%EC%95%84%EB%8A%94-%EC%A2%85%EA%B5%90%EC%9D%B8?category=1137793

이때 자아의 조정으로 원초아가 움직이면

세상과 상호작용이 되는 상태이므로 

정신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원초아에게 지배를 당하여 

스마트폰을 멈추지 못한다던지 앞에서는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주고 몰래 방에 들어가 공폰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자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노력 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아를 통제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교육이고 

두뇌에서는 전두엽 부분이라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예를 들었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 전두엽 부분의 발달을 저하시키게 되고

전두엽은 대인관계 및 상호작용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반대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전두엽이 발달하게 되고 자아를 통제....

자아를 통제하기보다는 건강한 자아를 만드는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해 본다.

초자아의 양면성

자아의 통제가 강력해져 자녀가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독서를 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면

이것은 초자아 등장 가능성이 보인다.

이때 부모들은 자녀의 모습에 감동하게 된고

자녀는 부모를 만족시켰다는 만족감에 초긍정 초자아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지나치면 타인에게 간섭하는 태도를 지니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초자아에 심취한 자녀는 다른 또래나

동생이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제재를 가한다던지 무시하게 되는

성향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자아는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통제시키는 중요한 기능임을 잊지 말자.

 

초자아 빠진 녀석들은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주 건강한 초자아를 가지게 된 사람은

높은 도덕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주변의 종교인인 목사님과 스님은

초자아가 아주 건강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상담이론 공부를 하며 느낀점

 

프로이트의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외국어로 집필되었고

내가 공부하는 김춘경 공저의 상담의 이론과 실제는 우리나라의 상담심리학 교수님들의 번역본이다.

공부를 하며 유튜브와 블로거등 많은 글을 읽어보았지만

조금씩 다른 해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사베이에서 구한 아래의 사진을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눈여겨볼 수 있다. 

https://inforrlife.tistory.com/entry/%EC%9B%90%EC%B4%88%EC%95%84%EB%8A%94-%EC%A7%84%EC%83%81-%EC%B4%88%EC%9E%90%EC%95%84%EB%8A%94-%EC%A2%85%EA%B5%90%EC%9D%B8?category=1137793
초자아의 자기 비판

초자아의 도덕성을 기르기 위한 자기비판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비판을 이겨내면 건강한 초자아가 되겠지만

자칫 완벽주의자로 들어서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림자 속의 영어를 살펴보면

 

unlovable-귀엽지 않은

weak-약한

incapable-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무능력)

worthless-가치 없는

helpless-무력한

undesirable-바람직한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인지 비난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자신을 마주하는 개념은 불교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선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원했던 과거의 스님들(달마대사로부터 이어지는 선종불교)은

자신을 마주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기억나는 일화로 1900년대 경허스님의 경우 송곳을 턱에 대고 잠들지 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증진했다고 하는데

초자아의 성장을 위한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경허스님과 선종에 대한 이야기는 최인호 소설가님의 길 없는 길을 보면 재미있게 알 수 있다.

https://inforrlife.tistory.com/entry/%EC%9B%90%EC%B4%88%EC%95%84%EB%8A%94-%EC%A7%84%EC%83%81-%EC%B4%88%EC%9E%90%EC%95%84%EB%8A%94-%EC%A2%85%EA%B5%90%EC%9D%B8?category=1137793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는 글이지만 오랜만에 컴퓨터 게임을 떠나 글 쓰는 재미를 느낀듯하다.

다음글은 프로이트의 방어기제에 대한이야기를 예시와 함께 풀어써보겠다.

그리고 최인호 님의 길 없는 길은 너무 사랑하는 책인데 포스팅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