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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by 꿀꿀라이프 2024. 4. 19.

김해 수로왕비릉 인도 공주의 여행

 

 가락국(=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은 A,D 48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였습니다. 당시 16세였던 허황옥 공주는 신하 20명과 함께 배를 타고 신라로 건너왔다고 하는데 인도의 향해술이 뛰어났나 봅니다. 전설에 따르면 꿈속에서 동쪽의 왕을 만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향하는 길이 험하여 실패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 갠지스강에서 채취되는 거대한 파사석을 싣고 난 후 가락국으로 오는 것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가져온 인도의 파사석은 수로왕비릉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관람시간 안내

동절기 09:00-18:00

하절기 08:00-19:00, 08:00-20:00

관람요금 : 무료

 

김해 수로왕비릉은 외지인에게는 문화유적이지만 김해지역민들에게는 쉼터요 걷기 코스의 일부입니다. 수로왕비릉 돌아나가면 구지봉과 구지마을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운동하시는 어른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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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홍살문

 

김해 수로왕비릉 홍살문 

 

 수로왕비릉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홍살문은 붉은 색 기둥과 상부에 설치한 화살모양의 나무살을 가리킵니다. 도깨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붉은팥과 닭 피라고 합니다. 이렇듯 예부터 우리 조상은 붉은색이 악귀와 나쁜 액운을 쫓아내어 준다는 민간 신앙을 믿어 왔습니다. 부적의 붉은 글씨도 이와 상관이 있습니다. 화살촉과 가운데 삼지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귀나 나쁜 액운이 찾아온다면 공격하겠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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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입구

 

 수로왕비릉 입구에는 들어가는 문이 세 곳입니다. 오른쪽이 입구이고 왼쪽이 출구입니다. 그렇다면 가운데 문은 어떤 역활을 할까요?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할 때 여는 문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물론 큰 행사에 가운데 문을 개방합니다. 하지만 가운데 문은 신이 나다니는 문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왕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운데 신이 다니는 문을 따로 만들어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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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신로

 

 수로왕비릉 안쪽에도 길이 세가지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정숙이라는 표지판이 올라간 부분이 신이 된 수로왕비가 다니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대 올라가면 안 되는 길은 아니니 정숙하고 다니시면 됩니다.

 

김해 수로왕비릉 주인 허황후(허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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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부표준영정 <수로왕과 허황후>

 

 해당 허황후의 영정그림은 화가 오낭자님이 그리신 것으로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에서 제작하여 정부표준영정으로 정한 것입니다.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에서 그림을 의뢰한 만큼 복원에 가까운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 같습니다.

 

 수로왕과 허황후는 100년이 넘게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조선시대 때 60을 넘기기 어려운 신체조건이었던 조상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장수하신 것입니다. 특히 김수로왕은 150년 가까이 살았는데 신선이었나 봅니다.

 

  • 수로왕 a.d 42년 탄생 199년 승천
  • 허황후 a.d 32년 탄생 189년 승천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는 10명의 왕자가 탄생하였는데 두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성씨인 허씨를 물려 주었고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김해 허씨의 시조는 김수로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천 이씨도 김수로왕이 시조인데 김수로왕의 후손 중에 김해 허씨 성을 쓰는 허기라는 사람이 당현종 시대 안록산의 난에 도움을 주어 당현종의 성씨인 이씨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천 이씨 또한 김수로왕이 시조가 되는 성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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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파사석탑

 

 수로왕비릉에서 관리되고 있는 파사석입니다. 높은 파도로 인도에서 가락국으로 올 수 없을 때 거친 파도를 잠재웠다는 파사석은 한반도 땅에서 채취가 되지 않는 암석입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이 파사석을 채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전설로만 생각하기에는 실제 증거 많아 유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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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파사석탑

 

 김해 수로왕비릉의 파사석은 현재 석탑형태로 구성해 두었기 파사석탑으로 명칭하고 있습니다. 파사석탑은 국립중앙국립박물관에서 전시한 가야전에 소개된 신비한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해의 수로왕비릉의 파사석탑이 이외에 허황후가 가져온 파사석이 남해 금산 보리암에 삼층석탑의 형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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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김해 수로왕비릉입니다. 본래 허황후의 무덤은 호계사 앞에 있었는데 지금의 구산동으로 옮겼습니다. 가야시대 왕족이나 지배층의 무덤은 대성동 고분군에서 잘 나타나듯 집단 무덤 형태임에 비하여 김해 수로왕비릉은 조선시대 왕릉의 형식을 뛰고 있습니다. 또한 대성동 고분군에는 저렇게 봉분을 쌓지도 않을뿐더러 봉분이 저렇게 크지도 않습니다. 1873년 고종 10년에 이 장소로 옮겨졌기 때문에 김해 수로왕비릉의 형태가 조선시대 임금의 봉분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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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bsp; 한국학 중앙연구원&nbsp;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1920년 일제 강점기에 촬영한 김해 수로왕비릉 모습입니다. 제가 이 사진을 가져온 이유는 김해 수로왕비릉 앞쪽에 있는 석탑 때문입니다. 석탑의 형태가 현재의 파사석탑가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아마 저 시절에는 파사석탑을 단순히 석탑의 종류로 여겼나 봅니다. 하긴 김해수로왕비릉 주변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사진을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호되지 않는 문화유산으로 여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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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김해 수로왕비릉 좌측 편으로 언덕으로 이어지는 숲 속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가야의 건국설화의 장소로 알려진 김해구지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지봉에서 수로왕을 맞이하며 불렀다는 구지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구지가 의미 해석 (거북이는 수로왕을 의미) 개익적인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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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성동 박물관 구지가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구지가를 읽어가며 왜 이 노래가 왕을 맞이하는 노래일까 생각해 봅니다. 거북이는 장수하는 동물이기에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남근석을 보면 거북이 머리를 형성화한 문화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해석을 한다면 신성한 힘을 가진 남자를 맞이하는 노래로 보입니다. "구워먹으리"의 의미는 이중적 의미로 거북이에게 겁을 주는 것과 수로왕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구지봉에서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 국립김해박물관과 연결됩니다. 가야 역사학습으로 최적의 코스란 생각이 듭니다. 단체로 움직인다면 버스를 국립김해박물관으로 보내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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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여행 김해 수로왕비릉 문화해설사님과 함께

 

 오늘은 야외활동에 지장이 많은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입니다. 먼 곳까지 시야 확보가 되지 않습니다.

 

 김해 수로왕비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 멀리 부원동 푸르지오가 있는 곳이 과거에서는 바다였습니다. 김해의 해는 바다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일제강점기 부산 하단 낙동강 삼각지 부근을 막아 바닷물 유입을 막았고 지금의 김해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전쟁식량등을 생산하기 위한 땅으로 만들기 위한 방책인 듯합니다. 

 

 김해가 바다였을 때 봉황동 유적지 부근이 큰 항구였다고 합니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김해로 인연이 닿은 것도 그러한 지형적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해 대성동박물관에 가면 김해가 바다였을 때의 지형도가 있다고 합니다. 김해의 어디까지가 바다였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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